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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부엌과 부뚜막

역사

by 울몰 2021. 10. 17.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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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공원 안에 있는 한성백제박물관에 삼국의 부엌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며 어릴적 시골의 아궁이와 부뚜막, 굴뚝 연기가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전시회를 둘러보고 정리하며 조상들의 불을 이용하는 지혜에 새삼 감동했다.



고구려의 부엌 모습은 무덤에 그려진 벽화와 보루(保壘) 출토품에 잘 나따나 있다.
황해도 안악 3호 무덩에 보이는 상류층의 부엌은 단독으로 독립된 공간이었다.
부뚜막에서 음식을 요리하고 그 옆에서는 상차림을 하였다.
부엌에는 우물. 방앗간. 푸줏간 등의 부속 시설도 사용 기능에 따라 별채로 구분되어 있다.
구조는 크게 기둥과 기와를 얹은 고정식 부엌과 초본류(草本類)를 얹은 간이식 부엌이 확인된다.
군사 주둔지, 산성에서 주로 발견되는 부엌은 방형이나 장방형의 지상 거주지 내에 있고,
하층민과 병사들의 부엌 모습은 상류층 부엌과는 사뭇 달랐을 것이다.
주거지 내부의 벽을 따라 설치된 부엌은 'ㄱ'자 모양이나 'ㅣ'자 모양 구들이 딸려있어 음식 조리와 난방을 겸했다.
할석(割石)을 세우고 그 위에 판석(板石)을 덮고 짚을 섞은 흙으로 틈을 채워 만들었다.
고구려의 취사시설은 굴뚝과 아궁이가 서로 먼 반대 방향에 있는 형태이다.
용호동 1호 무덤 출토 철제 이동식 부뚜막처럼 아궁이가 측면에 위치하며 솥걸이가 하나인 것이 일반적이다.
굴뚝으로 들어오는 맞바람을 막아 불이 잘 들게 하면서, 동시에 부뚜막과 구들을 연결하여 음식 조리와 난방을 겸했던 지혜가 엿보인다.
이러한 취사시설에서 시루, 쇠솥(鐵釜), 솥 모양 토기(釜形土器), 깊은 바리 모양 토기(深鉢形土器) 등을 이용하여 음식을 만들었다.
곡물을 쪄 먹는 데는 시루와 쇠솥을 결합하여 사용하였으며, 솥 모양 토기 또한 같은 기능을 하였다. 깊은 바리 모양 토기는 액상 음식이나 반찬류의 조리등에 사용되었다.
평안북도 운산면 용호동 제1무덤에서 철제 이동식 부뚜막이 발견되었다.
주조 방식으로 만들어진 철제 부뚜막으로, 전체적인 형태는 안악 3호 무덤 부엌 그림에 보이는 부뚜막의 축소판이다.
긴 연소부 한쪽에 아궁이와 솥받침을 만들고, 반대쪽에 'ㄱ'자 모양으로 꺾이는 굴뚝을 붙였다.
굴뚝을 아궁이 바로 위에 두지 않고 반대쪽 끝에 달아서 아궁이와 굴뚝을 나란히 배치란 점이 특징이다.
아궁이의 장식은 돋을 새김을 하여 불꽃무늬를 표현했고, 휴대가 가능해 실제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기도 하지만 *명기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명기(明器): 장사 지낼 때 죽은 사람과 함께 묻는 기명(器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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